9/27 사사기 6:33-40
기드온은 원래 싸움 좀 하는 용사였나 보다. 몰려온 사람들이 훈련이 되어 있는 지 여부를 알 수 있으니 말이다. 그게 또 말처럼 쉬운 게 아닌 것 같다. 그들 또한 싸움 좀 한다는 사람들이었을 테니.
기드온의 두려움은 인간적으로 볼 때 당연한 두려움이다. 병사들도 그렇고 무기도 변변히 없는데, 상대는 훈련 받은, 무기체계를 갖춘 군대이고, 방어가 아닌 공격을 염두에 두었으니 그 두려움은 더욱 컸을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주도적인 적은 사실 그림의 떡이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그들이 꿈이 없고, 목표가 없는 삶을 살아가는 데는 기성세대들의 잘못이 반 이상인 것 같다.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고, 부모들이 생각한 길로 끌고다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꿈이고 목표인데, 부모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 꿈이 그 생각들이 자꾸 꺾인다. 자꾸 꺾이며 생각하기 어렵다. 자기검열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엄마아빠는 어떻게 생각할까? 에이, 안 된다고 하겠지."
그들은 부모때문에 마음대로 꿈을, 생각을 할 수 없는 상태다. 그러나 결국 그 모든 책임은 부모가 아니라 자식들이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꿈도, 목표도 없는데, 사회는 꿈과 목표를 갖길 강요한다. 곧 맞닥뜨려질 미래는 행복의 희망찬 미래가 아니라, 두려움의 미래로 다가온다. 기드온의 두려움은 그런 두려움인 것 같다.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두려움, 안개만 가득한 두려움.
식상하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방법일 수도 있지만, 오늘의 제목처럼 두려울 때는 표징이 아니라 믿음을 구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최선이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 적당한 말인 것 같다. 부모에게나 자식에게나 온전히 해당되는 말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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