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사무엘하 19:1-8
아버지가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다윗의 경우는 좀 특수한 경우이긴 하다. 반역한 이가 아들이고 아들의 죽음은 곧 전쟁의 승리를 의미한다. 승리하고 돌아온 백성들, 그러니까 반역을 했지만 아들을 죽이고 돌아온 백성들을 환영해야 하는 자리, 그 자리가 왕의 자리, 다윗의 자리였다. 우리는 다윗의 마음도 이해하고 요압이나 군사들의 감정도 이해한다.
해설에서는 요압의 설득을 권면이라 했다. 다윗은 군권을 쥔 요압 가문에 대한 두려움을 종종 비췬 바 있다. 보통은 그 두려움을 민심을 얻는데 활용했지만, 지금은 그 두려움에 굴복한 것처럼 보인다. 요압의 권면(?)은 분명 협박이었다. 다윗이 말을 따르지 않았다면 요압은 자신의 말대로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요압의 협박에 못이겨 백성 앞에선 다윗의 선택은 묘수가 되었던 것 같다. 백성들은 위로를 받았고, 자식 잃은 아버지의 슬픔도 공감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다윗이었다면 감정과 사명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 단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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