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9 고린도전서 6:1-6
어쩌면 바울의 시대에는 생활 전반에 걸쳐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유대인들의 생활이라는게 성경을 기반스로하는 전통이 있었고 신실하던 그렇지 않던 율법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유학의 개념이 지배하던 때가 있었기에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현대는 좀 다르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자신의 삶을 지배한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왜 하나님의 영향력이 점점 약해지고 있을까? 아무래도 내 탓보다는 남 탓을 해야 할 것 같다. 참고할, 의지할,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이 쉽고 빠르게 내 주변에 나타나기 때문 아닐까 싶다. 또 시대적 상황이 신본이 아닌 인본 위주의 시대라 더한 것 같기도 하다. 신본주의 시대에서의 희생과 봉사는 당연했지만, 개인주의 시대에서의 대가없는 희생과 봉사는 심하게 보면 착취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면 돈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정없음을 느끼고 로봇화 됨을 느끼고 메마름을 느끼는 이유도 그 때문 아닐까 싶기도 하다. 뿌듯함, 든든함, 충만함 등은 그런걸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있다라고 느끼는 때는 언제일까? 최소한 그때는 아니지 않을까?
어떤 의미에서 진정한 인본주의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상황 아닐까 한다. 하나님은 인간인 우리보다도 더 우리를 사랑하시니까. 또 우리를 더 잘 아시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인 어떤 것을 채워주시지만, 때때로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고 목매는 물질도 채뭐주시니까. 우리가 하나님 주의를 택할 때, 하나님은 진정한 인본주의를 깨닫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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